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세븐업에 정신과 약이 들어 있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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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세븐업에는 한때 정신과 약 성분이 들어 있었습니다. 몰래 넣은 것이 아닙니다 — 1929년 출시 당시 광고에는 "리티에이티드", 리튬이 들어 있다는 문구가 큼직하게 박혀 있었고, 그걸 자랑하며 팔았습니다. 지금도 양극성 장애의 표준 치료제인 리튬이, 19년간 국민 음료 속에 들어 있었던 이야기입니다. 대공황 시대, 기분을 올려 주는 음료 1929년 세인트루이스의 찰스 라이퍼 그릭이 내놓은 이 음료는 출시 시기가 대공황과 겹쳤습니다. 나라 전체가 일자리를 잃고 우울에 빠져 가던 시대 — 광고는 바로 그 지점을 파고들었습니다. 마시면 가라앉은 기분이 끌어올려진다는 것. 그 비결로 광고 전면에 내세운 성분이 리튬시트르산이었습니다. 당시 약국에서 기분을 안정시키는 용도로 쓰이던 물질이었습니다. 참고로 이름의 숫자 7이 왜 붙었는지는 지금도 미스터리입니다 — 재료가 일곱 가지였다는 설, 리튬의 원자량이 약 7이었다는 설이 전해지지만 확인된 것은 없습니다. 리튬 광천수의 시대가 먼저 있었다 그릭이 처음은 아니었습니다. 1800년대 후반부터 미국과 유럽에서는 리튬이 녹아 있다는 온천과 샘물이 건강의 명소로 떠올랐고, 샘물은 병에 담겨 전국으로 팔려 나갔습니다. 금주법 시대(1920~1933)에는 약국의 소다 파운틴이 술집의 자리를 대신하며 전성기를 맞았고, 음료와 약의 경계가 흐릿하던 그 시대에 음료 속 리튬은 괴상한 재료가 아니라 당연해 보이는 처방이었습니다. 19세기 리튬 광천수 열풍 — 요산을 녹이는 리튬이 마음의 병도 고친다는 "요산 체질" 이론 1929년 세븐업 출시 — 광고에 리튬 함유를 당당히 표기 1936년 제품명이 "세븐업"으로 짧아지며 리튬 표기는 이름에서 사라짐 (성분은 그대로) 1948년 음료·맥주의 리튬 사용 금지 — 세븐업에서도 리튬이 빠짐 왜 하필 리튬이었을까 당시 의학계는 진지하게 믿었습니다. 몸에 요산이 쌓이면 통풍이 생기고, 요산이 뇌를 공격하면 우울과 ...

퍼시 줄리언은 왜 세계적 발견을 하고도 교수가 될 수 없었을까? — 콩 한 알로 코르티손 약값을 무너뜨린 화학자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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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퍼시 줄리언의 재능은 세상이 거부할 수 없는 수준이었습니다. 1935년 그는 옥스퍼드 대가의 오류를 공개적으로 정정하며 세계 화학계의 주목을 받았지만, 돌아온 것은 교수직이 아니라 거절이었습니다. 이유는 단 하나, 피부색이었습니다. 그런데 그는 멈추지 않았습니다. 몇 년 뒤 콩에서 코르티손의 원료를 대량으로 뽑아내는 길을 열어, 천문학적이던 약값을 무너뜨렸습니다. 노예의 손자, 중학교에서 멈춘 정규 교육 퍼시 레이본 줄리언은 1899년 앨라배마주 몽고메리에서 태어났습니다. 조부모는 노예였고, 몽고메리에는 흑인 아이가 다닐 고등학교가 없어 그의 정규 교육은 중학교에서 멈췄습니다. 그런데도 그는 드포 대학교에 들어가 고등학교 과정을 뒤늦게 메우고 아르바이트로 학비를 벌며 1920년 수석으로 졸업했습니다. 재능은 처음부터 거기 있었습니다. 세상이 그 재능을 받아들일 준비가 안 돼 있었을 뿐입니다. 하버드의 문턱에서 빠진 사다리 한 칸 줄리언은 하버드에서 석사를 받았지만 박사 과정의 조교 자리는 흑인에게 줄 수 없다는 이유로 막혔습니다. 그는 장학금을 받아 오스트리아 빈 대학교로 건너가 박사 학위를 받았고, 1935년에는 모두가 불가능하다고 여긴 약 성분을 합성해 옥스퍼드의 대가가 틀렸음을 증명했습니다. 세계가 주목했음에도 미국의 대학과 대기업 연구실은 그에게 문을 열지 않았습니다. 1899년 몽고메리 출생 — 조부모는 노예, 흑인 고등학교가 없어 정규 교육은 중학교까지 1920년 드포 대학교 수석 졸업 1935년 약 성분 합성으로 옥스퍼드 대가의 오류를 정정 — 세계적 주목 이후 콩(대두)에서 스테로이드 원료를 뽑는 공정으로 코르티손 약값을 대폭 인하 콩 한 알이 약값의 역사를 바꾸다 글리든 컴퍼니의 연구소에서 줄리언은 대두 단백질과 스테로이드 연구에 매달렸습니다. 콩에서 얻은 스티그마스테롤을 원료로 호르몬과 코르티손 계열 물질을 값싸게 만드는 길이 열리자, 관절염 환자들에게 그림의 떡이던 코르티손의 가격이 무너지기 시작했습니다. ...

WD-40, 마흔 번째에야 성공한 스프레이 — 만든 사람은 왜 두 명이 됐을까?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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결론부터: WD-40이라는 이름은 성공을 자랑하는 이름이 아니라 실패의 횟수를 세어 붙인 이름입니다. WD는 물을 밀어낸다는 뜻의 Water Displacement, 40은 마흔 번째 배합이라는 뜻입니다. 그리고 이 배합을 누가 만들었는지는 지금도 논쟁 중입니다 — 회사 공식 기록이 가리키는 사람과 역사학자가 지목한 사람이 서로 다릅니다. 미사일을 녹에서 지키려던 스프레이 1953년 9월 23일, 미국 샌디에이고에 직원 세 사람뿐인 작은 회사 로켓 케미컬 컴퍼니가 문을 열었습니다. 큰 고객은 항공기 제조사 콘베어였고, 이들이 만들던 아틀라스 미사일에는 약점이 하나 있었습니다. 연료 탱크 벽이 곧 미사일 겉껍질인 풍선 탱크 구조라, 겉껍질이 녹슬면 미사일 전체가 위험해지는 설계였습니다. 그래서 필요했던 것이 겉껍질을 녹과 부식에서 지켜 줄 강력한 방청제였고, 실험실은 서른아홉 번의 배합이 기대에 미치지 못한 끝에 마흔 번째에서 원하는 성능을 얻었습니다. 항목 내용 이름의 뜻 Water Displacement, 40th formula — 물을 밀어내는 마흔 번째 배합 출발점 1953년 샌디에이고, 로켓 케미컬 컴퍼니 (직원 3명) 첫 임무 콘베어 아틀라스 미사일 겉껍질의 녹·부식 방지 전환점 직원들이 집에서 쓰기 시작하며 가정용 제품으로 확산 발명자가 두 명이 된 사연 회사 공식 기록: 창업자 중 한 사람인 노먼 라슨 쪽으로 발명의 공이 기록돼 있습니다. 역사학자의 연구: 실제 배합을 만든 인물로 또 다른 노먼, 노먼 로슨을 지목하는 연구가 있습니다. 왜 단정할 수 없을까: 당시 실험 기록과 증언이 완전하지 않아, 확인된 것과 확인되지 않은 것을 나눠 보는 태도가 필요합니다. 실패를 기록으로 남기는 태도는 다른 이야기에서도 빛납니다. 존재하지 않는 광선을 둘러싼 N선 사건 이 기록과 검증의 부재를 보여준다면, 물질이 맥락에 따라 독에서 약으로 바뀌는 반전은 다이나마이트가 심장약이 된 이야기 에서 확인할 수 있습니다. 군용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