목수의 아들은 왜 2만 파운드를 끝내 받지 못했을까?
요약: 목수 출신 존 해리슨은 바다에서 경도를 잴 수 있는 시계를 만들었습니다. 그런데 영국 경도위원회는 그에게 약속했던 2만 파운드 상금을 끝내 온전히 주지 않았습니다. 시계는 정확했지만, 심판석에는 해리슨의 경쟁자들이 앉아 있었기 때문입니다. 경도 문제는 왜 목숨이 걸린 문제였을까? 18세기 배는 위도는 비교적 쉽게 알 수 있었지만, 경도는 알기 어려웠습니다. 경도를 모르면 배가 지금 어디에 있는지 알 수 없었고, 암초와 해안에 부딪히는 사고가 잦았습니다. 1707년 실리 제도 해난 이후 영국 의회는 1714년 경도법을 제정했습니다. 바다에서 경도를 일정 오차 안에 재는 방법을 제시하면 최대 2만 파운드를 주겠다는 파격적인 상이었습니다. 목수의 아들, 시계에 도전하다 존 해리슨은 목수 집안 출신으로, 정규 과학 교육을 받은 학자가 아니었습니다. 그는 나무 시계를 만들며 얻은 감각으로 바다에서도 흔들리지 않는 시계에 도전했습니다. 육지 시계는 배의 흔들림과 온도 변화, 습기에 약했습니다. 해리슨은 1735년 첫 번째 해양 시계 H1을 완성했고, 이어 H2, H3를 만들며 수십 년을 보냈습니다. H4, 바다에서 증명되다 결정적인 전환점은 손목시계 크기의 H4였습니다. 1761년에서 1762년 사이 자메이카 항해 시험에서 H4는 허용 오차를 크게 밑도는 정확도를 보였습니다. 이론이 아니라 실제 항해에서 증명된 것입니다. 그런데도 위원회는 곧바로 상금을 주지 않았습니다. 시계를 분해해 공개하고, 같은 시계를 한 번 더 만들어 다시 시험하라는 조건이 붙었습니다. 왜 상금은 끝내 온전히 주어지지 않았을까? 심판 구조의 문제: 경도위원회에는 천문 방식, 즉 달의 위치로 경도를 재는 방법을 지지하는 천문학자들이 많았습니다. 해리슨의 시계 방식은 그들의 연구와 경쟁 관계였습니다. 끝없이 이동하는 기준: 시험에 통과해도 “한 번 더”, “다른 조건에서 다시”라는 요구가 이어졌습니다. 성공의 기준이 계속 뒤로 밀렸습니다. 기술 공개 요구: 상금을 받으려면 설계와 제작법을 낱...