토미 플라워스와 콜로서스 — ENIAC보다 3년 먼저 돌아갔는데, 영국이 30년간 숨긴 컴퓨터

토미 플라워스와 콜로서스 — 영국이 30년간 숨긴 첫 전자식 컴퓨터

결론부터:
세계 최초의 프로그래밍 가능한 전자식 컴퓨터는 미국의 ENIAC이 아니었습니다. 그보다 먼저 영국에서 가동된 콜로서스(Colossus)였고, 만든 사람은 대학 교수도 대기업 연구원도 아닌 우체국 기술자 토미 플라워스였습니다. 그런데 영국 정부는 이 기계의 존재를 30년 가까이 기밀로 묻었고, 전쟁이 끝난 뒤에는 만들어진 10대 중 8대를 직접 부숴 버렸습니다. 인류가 컴퓨터 시대를 연 첫 기계가, 스스로를 만든 나라의 손에 지워진 것입니다.

히틀러의 목소리를 훔쳐 듣던 기계

1943년, 영국 블레츨리 파크. 독일군 최고사령부의 암호 통신망 '로렌츠'가 내뿜는 암호문은 연합군에게 재앙에 가까웠습니다. 히틀러와 참모총장, 독일 본토와 전선의 육군 원수들이 나누는 최상급 전략 통신이 그 망을 타고 흘렀습니다. 수작업으로 풀면 몇 주가 걸리는 암호를, 독일은 매일 말을 바꿔 가며 다시 걸었습니다. 연합군에게 필요한 것은 사람의 속도를 넘어서는 기계였습니다.

영어판 이야기가 먼저 글로 나왔습니다. Was the First Computer Hidden for 30 Years? — Tommy Flowers and Colossus에서 같은 이야기를 영어로 읽을 수 있습니다.

봄베와 콜로서스는 다른 기계다

흔히 뭉뚱그려지는 두 기계를 먼저 갈라 둬야 합니다. 흔히 알려진 봄베(Bombe)는 독일 해군과 공군의 에니그마를 깨던 전기기계식 기계로, 콜로서스와는 작동 원리부터 다릅니다. 콜로서스가 겨냥한 것은 그보다 훨씬 강력한 로렌츠 암호였습니다. 로렌츠는 버전마다 바퀴가 다섯 개에서 일곱 개까지 달린 기계로 암호를 걸었고, 경우의 수는 10의 170제곱 — 감각으로 붙잡을 수 없는 숫자였습니다. 에니그마 해독의 전체 그림은 에니그마를 먼저 푼 것은 영국이 아니었다 — 폴란드 수학자들의 이야기에 정리해 두었습니다.

진공관 400개짜리 계산을 4,000개로 키운 도박

수학자 빌 텃이 로렌츠 암호의 구조를 수학적으로 꿰뚫은 뒤, 남은 문제는 속도였습니다. 맥스 뉴먼의 연구팀은 진공관 400개 남짓을 쓴 기계 '히스 로빈슨'을 만들었지만, 종이테이프가 자꾸 찢어지고 진공관이 터져 나갔습니다. 당시 상식은 분명했습니다. 진공관은 원래 자주 고장 나는 물건이라, 수천 개를 한 기계에 넣으면 고장에 고장이 겹쳐 도저히 돌아가지 않는다는 것이었습니다.

우체국 중앙연구소의 토미 플라워스는 정반대 결론을 들고 왔습니다. 진공관은 켰다 껐다를 반복할 때 죽는 것이지, 전원을 내리지 않고 계속 켜 두면 놀랄 만큼 오래 간다는 것 — 전화교환국에서 매일 몸으로 익힌 현장의 지식이었습니다. 그는 뉴먼에게 과감한 제안을 합니다. 히스 로빈슨의 열 배, 진공관 수천 개를 쓴 전자식 기계를 만들겠다는 것이었습니다. 학자들의 반응은 차가웠습니다. 플라워스는 대출까지 받아 자기 돈을 보태 가며, 런던 돌리스힐 우체국 연구소에서 자기 방식대로 기계를 지었습니다.

1944년 6월 1일, 노르망디 닷새 전에 켜진 전원

1944년 2월, 첫 콜로서스가 블레츨리 파크에 도착해 가동에 들어갔고, 개량형 마크 2는 1944년 6월 1일에 켜졌습니다. 노르망디 상륙작전 D-데이 닷새 전이었습니다. 마크 2가 풀어낸 로렌츠 전문은 상륙을 앞둔 아이젠하워에게 결정적인 확신을 줬습니다. 히틀러가 연합군의 속임수에 넘어가, 진짜 상륙 지점을 칼레로 굳게 믿고 있다는 사실이 그 전문에 들어 있었던 것입니다. 전쟁이 끝날 무렵 콜로서스는 모두 10대가 가동되고 있었습니다.

구분내용
설계자토미 플라워스 (영국 우체국 중앙연구소 기술자)
목표독일 최고사령부 로렌츠(Lorenz SZ40/42) 암호 해독
가동마크 1 — 1944년 2월 / 마크 2 — 1944년 6월 1일
생산 대수총 10대 (전쟁 말기 기준)
전후 처리8대 해체·파괴, 2대 GCHQ 이전 후 1959~60년 해체
공개1975년 사진 공개로 존재가 처음 알려짐

전쟁이 끝나자, 만든 나라가 지워 버렸다

종전과 함께 콜로서스 10대 중 8대가 그 자리에서 해체되고 부서졌습니다. 남은 2대는 후신 첩보기관 GCHQ로 옮겨져 1950년대까지 더 돌았고, 1959년과 1960년에 마지막으로 해체됐습니다. 기계가 사라진 자리에는 침묵이 남았습니다. 암호 체계 '터니' 자체가 1970년대까지 기밀이었고, 콜로서스의 존재가 사진과 함께 세상에 알려진 것은 1975년이었습니다. 히스 로빈슨을 만든 앨런 튜링의 동료 고든 웰치먼은 1982년 회고에서, 콜로서스를 만든 블레츨리의 엔지니어들이 전후 컴퓨터 발전에 기여할 기회 자체를 빼앗겼다고 적었습니다. 유럽의 컴퓨터 과학은 그 대가로 값비싼 시간을 잃었다는 것입니다.

플라워스 본인도 평생 입을 열 수 없었습니다. 자신의 발명을 특허로 남길 수도, 경력으로 쓸 수도 없었습니다. 전쟁 대출을 갚는 데 오랜 세월이 걸렸고, 1998년 세상을 떠날 때까지 그는 그저 우체국 기술자로 살았습니다. 미국에서는 1945년 공개된 ENIAC이 '최초의 컴퓨터'로 교과서에 올랐습니다. 그보다 먼저 돌아가고 있던 기계는, 존재 자체가 국가 기밀이었기 때문입니다.

자주 묻는 질문

Q. 콜로서스가 정말 세계 최초의 컴퓨터인가요?
A. '프로그래밍 가능한 전자식 디지털 컴퓨터'라는 기준에서는 콜로서스가 가장 먼저 가동된 기계로 평가받습니다. 다만 프로그램을 바꾸려면 배선과 스위치를 손으로 재배열해야 했기 때문에, 프로그램을 메모리에 저장하는 현대식 구조는 이후의 기계들에서 완성됐습니다.

Q. 콜로서스와 에니그마 해독 기계 봄베는 어떻게 다른가요?
A. 봄베는 에니그마를 겨냥한 전기기계식 기계이고, 콜로서스는 히틀러와 최고사령부가 쓰던 로렌츠 암호를 겨냥한 전자식 기계입니다. 상대도, 원리도, 만든 팀도 다릅니다.

Q. 플라워스는 왜 그렇게 오랫동안 알려지지 않았나요?
A. 콜로서스의 존재 자체가 국가 기밀이었기 때문입니다. 그는 비밀유지 의무 때문에 자기가 한 일을 말할 수 없었고, 기계와 설계도 대부분이 파괴돼 증거도 남지 않았습니다.

기계는 부서졌지만, 설계한 사람의 이름은 남았다

콜로서스 이야기의 진짜 비극은 기계가 부서졌다는 사실이 아닙니다. 한 사람이 인류의 도약을 만들어 놓고도 평생 그 사실을 말할 수 없었다는 데 있습니다. 그래도 진실은 결국 돌아왔습니다. 늦게나마 플라워스의 이름은 컴퓨터 역사의 첫 페이지로 복권됐고, 블레츨리 파크에는 콜로서스 복원기가 다시 돌아가고 있습니다. 14살 소년의 분필 그림이 수십 년을 건너 인정받았듯, 감춰진 진실도 제때를 기다립니다. 여러분은 '최초의 컴퓨터' 하면 어떤 기계가 떠오르시나요? 댓글로 여러분의 생각을 들려주세요.

Watch the full video: https://youtu.be/3U9fyMcZD-8

먼저 보면 좋은 영상

  • 테슬라 이야기 1부: https://youtu.be/f-Rek-UtHp8
  • 킬리 사기극: https://youtu.be/E_oDvOEqqVo

이 이야기는 유튜브 채널 와우사이언스(WowScience by TechSensia)의 영상으로도 만나실 수 있습니다. ▶ 채널 구독하기: https://www.youtube.com/channel/UCsLQQGWfka8togimX32jxsA?sub_confirmation=1 — 유튜브에서 '와우사이언스'를 검색해 보세요. 📷 인스타그램에서도 짧은 영상으로 만나실 수 있습니다: https://www.instagram.com/wowscience.techsensia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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